Time and Money

Friday, February 12, 2010

미 달러화의 처지

조선조 숙종 때 물려받은 재산으로 거부였다가 흥청망청 놀아 패가망신한 한량을 다룬 이춘풍전이 드라마화 한 적이 있었다. 이춘풍이 한창 돈을 물쓰듯 하던 시절에 그는 현찰대신 화선지에 ‘풍’이란 한자를 적어줌으로써 결제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저기 아무데서나 ‘풍’자 적힌 요즘식으로 말하면 ‘풍자어음’을 발행하고 다녔으니 어느날 이춘풍의 재산은 거덜나고 말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 풍자어음이 한동안 받아들여졌고 이 풍자 어음을 받으면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사실이다. 이춘풍의 재산은 한정이 돼있는데 풍자 어음은 계속 늘어만나니 그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질 것이 뻔한데도 풍자어음의 위력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춘풍의 집안재력을 과대평가해 풍자어음은 언제나 이춘풍의 집에만 가면 현찰로 교환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또 초기에는 실제로 그렇게 돈을 받아갔으니 그 신뢰를 더 확고히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이춘풍의 재산이 다 떨어지자 풍자어음을 가져가도 돈으로 바꾸주지 못하게 되었다. 결과는 요즘말로 하면 공황상태가 발생했다. 풍자어음을 가지고 있던 동네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몰려들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이춘풍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다.

문제는 이춘풍만 거지가 된 것이 아니고 돈이라고 믿고 있던 풍자어음도 단박에 휴지조각이 돼버린 것이다. 이춘풍과 그 동네가 다 벼락을 맞은 것이라고 하겠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을 통해 2조달러대의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 이후 활발해진 생산력을 바탕으로 해마다 무역흑자를 내면서 쌓아놓은 재산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고민은 이 무역흑자를 통해 벌어들였다는 재산이 미국의 달러로 저축되어있다는데 있다. 미국이 갚을 능력이 없어지면 어떻게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은 그 2조 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통한 빚을 지면서 그동안 흥청망청 살았다. 이춘풍의 삶을 산 것이다. 그리고 풍자어음이 시중에 남아돌 듯 달러는 중국, 일본, 러시아, 산유국 그리고 심지어는 한국에도 남아돌고 있다.

이춘풍의 동네처럼 이들 풍자어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빚갚으라고 달라들면 미국은 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달러가진 국가들도 같이 크게 손해를 입는다. 살 길은 하나밖에 없다. 달러가진 중국 같은 나라들이 차츰차츰 미국의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이춘풍전으로 돌아가서 보자. 하루 아침에 돈을 갚으라고 하면 같이 망한다. 그런데 이춘풍과 그의 현명한 처를 믿고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서서히 돈을 갚으라고 하면 같이 살아나는 길이 있다.

이렇게 서서히 미국의 빚을 갚아가는 길이 요즘 버냉키 연준의장이 외치는 ‘Rebalancing’ 즉 균형회복이다. 한마디로 이제 미국은 한꺼번에 그 돈을 갚을 수 없으니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사가라는 말이다. 그동안 중국이 열심히 미국에 물건 팔아 재산을 만든 것처럼 이제 거꾸로 미국산 제품을 팔아서 빚갚자는 말이다.

우리 미국에게 주어진 숙제는 분명하다. 그동안 빚내서 잘 살았던 생활을 청산하고 열심히 물건 만들어 중국 등 미달러 보유국에 팔아야 한다. 이춘풍의 처가 그랬듯 생활수준의 하락을 감수하고 허리띠 졸라매 열심히 살아야한다.

그러나 그나마도 지금이라도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언젠가 풍자어음을 들고 닥칠 동네사람들로 인해 이춘풍이 거지가 되듯 미국은 거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미국의 달러화는 이춘풍의 ‘풍자어음’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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