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and Money

Tuesday, February 08, 2011

2010년 12월 중앙일보

비곗덩어리

적군의 점령지가 된 도시에서 탈출하려는 집단이 한 마차 안에 타게되었다. 그 중에는 창녀가 끼어있었는데 귀족부부 등 지체높다는 다른 사람들은 같은 마차 안에 그런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분나빠했다.

긴 여행 중에 배가 고파졌고 유일하게 음식을 가져온 창녀가 음식을 나누어주자 그 동안 기분나빠했던 일행은 언제 그랬냐는듯 창녀에게 다가가 음식을 받아먹고 같은 인간으로 ‘대접’을 해준다.

그러다 목적지 중간쯤에서 마차는 저지를 당했고 적군의 장교가 창녀와의 하룻밤을 자는 것을 통과조건으로 내세웠는데 창녀는 아무리 비천한 자신이라도 적군에게 몸을 팔 수 없다고 버티면서 일행의 통과여부는 난항에 부딪힌다.

통과를 원하는 일행은 온갖 감언이설로 집요하게 창녀를 설득해 그녀는 결국 적군의 장교에게 몸을 허락하고 일행의 마차는 통과허가를 받아낸다. 그러나 정작 통과허가를 얻고나자 일행은 창녀를 더러운 여자라고 다시 무시하고 멸시한다.

프랑스의 문호 모파상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비곗덩어리’라는 소설의 줄거리다. 인간의 이중성과 극도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한 내용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아슬아슬하던 미국경제가 파국으로 치닫을 때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초강도의 구제정책을 실시했다. 우선 시간적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졌고 내용적으로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되었다.

여기에 새로운 시대의 대명사라고 할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많은 국민들은 경제파탄과 전쟁의 아수라장을 수습해 다시 건강한 미국을 만들기를 기대했다.

이 때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제는 이번 서브프라임으로 상징되는 거품과 그 붕괴의 원인으로 통제되지 않은 금융계의 탐욕이 지목되었고 새로운 시대는 절제와 근면과 남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기초로 재편성되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기득권으로 경쟁력을 마비시킨 미3대 자동차회사의 노조가 개혁되었고 금융계의 지나친 인센티브도 제한되었다. 1년 반 이상이 걸린 금융개혁의 틀도 마침내 이루어졌다. 금융개혁의 명분은 문제의 원인이었던 대형은행들을 국가경제에 대한 파장을 고려해 구해주면서 나타난 도덕적해이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제와 금융계가 안도의 숨을 돌리면서 대형은행들은 금융개혁안이 금융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외치고 있다. 더 나아가 금융개혁을 포함한 여러 경제개혁안들이 대부분 자유시장경제에 역행한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해봐야할 점은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지난 2년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부동산 거품의 후유증이고 그 상처는 너무 깊어 단기간에 누가와도 해결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잘사는 사람을 더 잘살게 하면 사회전체가 다 잘산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어마어마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그 힘에 못이겨 무너지고 말았다.

그 넘겨진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고통을 만들지 않도록 제도적 개혁을 하자는 것인데 사회의 파장을 고려해 살려준 대형금융기관과 기득권 층은 반기업적 발상이라고 몰아부치고 대공황과 같은 금융계 파탄을 방지한 금융 구제안은 무책임한 정책으로 폄하된다.

그리고 마침내 개혁을 주도한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참패를 했고 지금의 경제문제는 마치 모두 민주당과 오바마대통령의 실책인 것으로 밀리고 말았다.

창녀라고 비하하면서 필요할 때는 인간대우를 해주다 목적달성 후에는 다시 무시하는 위선을 보여준 소설 ‘비곗덩어리’가 도탄에 빠진 경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개혁세력이 이번 중간선거로 무너진 상황과 비슷하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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