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and Money

Friday, August 01, 2008

2008년 7월

도전받는 환경보호의 절대가치

마침내 부시대통령이 대대적 원유개발안을 내놓았다. 내용은 크게 두가지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금지된 지역에 있는 유전과 저원유가 시절에 개발비용이 너무 높아 정당화되지 못하던 유전을 개발하겠다는 제안이다.

경제학적 개념으로 보면 생산비용이 높아 개발하지 못한 유전은 판매가격이 오르면 개발이 정당화되는 시장경제의 원리로 설명이 된다. 그러나 환경보호와 유전개발의 연관관계는 경제학적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안으로 보일 수 있다. 환경문제는 경제적 혜택과 비용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보호라는 뜻은 대략 환경파괴를 가져오는 인간의 생산 소비활동을 제한해 우리가 사는 환경을 인간과 생태계의 건강에 도움이 되게 만들고 미래 후손들에게 넘겨줄 자연을 보존하자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일단 이렇게 규정하는 친환경적 노력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들어서 좋고 생각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환경론자들의 목소리는 최근에 들어 점점 커지고 있고 경제활동과 정책에 깊이 스며들어 왔다.

자연과학이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던 산업화의 도입기 때는 공업화된 생산과정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지도 몰랐을 뿐더러 또 미친다 하더라도 어떻게 미치는지도 몰랐기에 환경파괴적 생산과 소비가 아무 의식없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과학의 발전으로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일어나면서 친환경적 노력이 주목을 받기시작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과 함께 친환경노력이 각광을 받게 된데는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산업화 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생산성으로 그 이전까지의 만성적 공급부족 현상을 해결해 공급문제가 거의 경제문제에서 사라질 정도까지 이르자 생산과 소비의 방법론에 대한 선택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즉 공급이 부족할 때는 환경이니 후손에게 넘겨주는 자연의 질 같은 문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가 생산이 충분하게 되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해안가 대륙붕 유전이나 알라스카 지역의 유전 개발에 대한 제한 역시 이러한 환경보호의 흐름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친환경적 사고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갑자기 공급에 제한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제2차 원유파동 이후 원유가 배럴당 10불대까지 내려가면서 장기간 저유가시대에 돌입했고 전세계적으로 원유의존도도 많이 낮아져 원유에 대한 위기감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 다시 원유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세계경제를 위협하자 원유공급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급기야 산유국들에게 생산량을 늘이라고 재촉하지만 생산능력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배경에서 마침내 부시대통령은 환경보호를 위해 금지돼온 해안원유와 알라스카 원유개발을 다시 허락해달라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앞에 환경문제 역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20여년 간 세계는 친환경을 위해 유전의 개발을 제한하고 선진국의 소비자는 웰빙을 위해 유기농의 혜택을 강조해 왔다.

그러다 이제 줄어든 공급 때문에 고통받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1981년 이후 금지돼오던 해안유전의 개발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은 계속 안된다고 주장하겠지만 지금처럼 휘발유값이 계속 오르면 그 힘을 잃어갈 것이다.

세계적 식량파동이라 할 수 있는 곡물가의 인상은 가난한 국가의 처지에서 비싼 곡물을 살 수 없어 굶는 지경에까지 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유기농이 친환경적이고 몸에 좋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로 흐를 것이다. 유기농은 다름 아닌 전통 방식의 경작이고 그 생산성은 현재 전세계 인구의 식량공급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신도 자원의 유한성과 생산성의 한계 앞에 항상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시대이다. 어쩌면 가치있는 삶과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삶은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상반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이 어려워지면 더 많은 사람을 위해야하는 생존의 명제앞에 환경보호라는 가치는 물러설 수 밖에 없는 힘든 현실에 직면케된다. 결국 환경보호도 경제적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