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and Money

Thursday, June 19, 2008

2008년 6월 5일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은 힘

한국의 신용정보산업 발전을 위한 New Credit Paradigm 컨퍼런스는 올해 일본에서 개최되었다. 은행과 신용카드회사의 신용정보담당 임직원들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 필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기회로 인해 참석케 되었다.

행사가 치러진 곳은 오이따라고 하는 후쿠오까에서 약 두시간 가량 동남쪽에 위치한 뱃부온천으로 유명한 소도시였다. 일본 4대 섬중 최남단인 규수의 가장 큰 도시라는 후쿠오까 지역은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상업장려정책의 산물로 발전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여독과 심도깊은 세미나의 긴장이 겹쳐 지친 참석자들에게 반가운 저녁식사 시간이 찾아왔고 일행은 카이세키라 불리는 일본식 정식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았다. 대형관광버스가 어떻게 빠져나갈까 걱정될 정도로 좁은 길을 따라 도착한 식당은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더 좁은 골목길로 5분 정도 걸어가는 곳에 위치한 전통 일본식 와옥이었다.

꽤 인원이 되는 우리 일행이 안내된 방은 넓은 다다미 방이었고 식탁은 마치 회의를 하듯 벽을 둘러 각각 한사람마다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모두 기모노로 차려입은 직원들이 식당주인이라는 오카미 여인의 인솔로 들어왔다.

주인은 무릎을 꿇고 절을한 후 계속 꿇은 자세로 환영인사와 식당소개를 한다. 낮은 톤이면서 조용하게 그리고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주인의 설명은 정갈하게 차려진 식당의 분위기와 어울리면서 저녁식사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어갔다

주인의 연세가 얼마냐는 난처한 질문에 여성에게 나이는 절대 묻지않는 미국예의에 젖은 나는 한편 미안하면서도 다른 한편 저 노련한 주인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미소로 일단 무례한 질문자를 편케해주면서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고 슬쩍 비켜가는가 했더니 자기가 이곳을 맡은 때가 설흔한살이었고 그 후 55년간 이 식당을 지켜왔다는 대답으로 한 여인의 나이가 아닌 식당의 역사로 겹쳐지는 인생을 은은히 그러면서도 당당히 보여주었다. 갑자기 조그마한 늙은 여인이 큰 모습으로 다가왔다.

설명의 마지막에 바로 옆에 앉아있던 젊은 여인을 가리키며 내 후계자라고 소개한다. 많아야 삼십대 초반인 후계자를 놓고 사람들이 자기 동생이라고 오해한다는 농담과 함께 실은 손녀라고 관계를 밝힌다. 대를 이어 지켜가는 장인정신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세계대전을 수행할 만큼 군사강국이기도 했고 패전 후 기적같은 경제부흥으로 현재 세계2위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문명수준은 어디에 내놔도 불편치 않을 만큼 현대식이다.

그런데 일본이 하나 더 가진 것이 있다. 단순한 저녁식사를 단숨에 의식으로 만들 수 있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힘이다. 초현대식 건물과 최첨단의 과학 문명이 판을 쳐도 일본 구석구석에는 몇 백년을 이어오는 오랜 건물과 전통의 흐름이 간직돼 있다.

이 흐름은 너무나 당당하기에 오래되었으나 낡지않은 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86세의 노인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나 추하지 않고 또 자신의 손녀에게 식당을 인계시켜도 세습이라는 손가락질 보다는 대를 이어 지켜가는 장인정신이 돗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문명의 발전이 전통을 파괴하고 전통의 고수가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분법이 일본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받들어주는 조화를 통해 극복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순서인 차 한잔을 들고 찻잔에 담긴 세월의 깊이를 음미하면서 다도가 예술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설명이 가슴깊이 다가왔다.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은 일본! 경제의 발전이 새로운 창조로 이루어지면서도 옛것을 지켜갈 수 있다는 실제 증거를 체험케 해주고 있다. 일본 소도시의 저녁식사에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또 모든 세계가 새로운 발전만을 생각하면서 저질러놓은 서브프라임의 문제도 오랜 역사를 통해 배운 과거의 교훈을 잘 지켰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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